“정신장애인 인권증진 막는 비자의입원제도 개선돼야”

정신요양시설 및 정신요양기관의 입원 환자 10인 중 7인 이상이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강제 입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비자의 입원. 장애계와 인권 전문가들은 ‘신체자유를 보장한 헌법과 UN 장애인권리협약 14조 등의 법령 위반’ 뿐 아니라 그 심각성에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머리를 모았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24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하고 있는 프레지던트 호텔 31층에서 비자의입원제도 및 지역정신보건체계 개선을 중심으로 정신장애인 인권 증진 토론회를 열었다.

현재 정신요양시설 및 정신요양기관 입원 시에는 정신보건법에 명시돼 있는 ‘자의입원’, ‘보호자의무에 의한 입원’, ‘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한 입원’, ‘응급입원’ 중 한 조항에 해당하면 가능하다. 이는 결국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비자의입원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를 악용한 정신장애인 인권 유린이 벌어지고 있다.

인권위에 따르면 한국의 정신장애인 입원환자 수는 2012년 기준으로 8만659인으로, 이 가운데 본인 의사에 따른 입원은 24.1%인 1만9,441인에 불과하다. 나머지 6만1,128인은 비자의 입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평균 입원기간 역시 237일로, 약 50일 미만인 선진국에 비해 매우 길다.

정신병원 입원절차, 헌법을 위배하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정신요양시설 및 정신요양기관으로 입원할 때 본인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는 ‘자의입원’이 이뤄져야 하고, 이를 제외한 입원 제도는 개선되거나 폐지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정신보건법 상의 입원경로를 보면 자의입원 조항을 제외하면 비자의입원이 가능하다.

비자의입원의 경로를 보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결과 입원의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정신장애인의 자상이나 타해의 위험이 없어도 6개월간 입원이 가능하며 필요에 따라 연장이 가능하다.

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한 입원의 경우는 자·타해의 위험이 있을 시 2주간 한해 임시적 강제입원조치를 시킬 수 있다. 2인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계속 입원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있다면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치료를 의뢰할 수 있다.

또한 응급입원 역시 자·타해의 위험이 컸다고 판단될 때, 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를 얻어 72시간 안으로 응급인원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하명호 교수.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하명호 교수.
이러한 비자의입원에 대해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하명호 교수는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상 위헌 소지가 있다는 데 집중했다.

헌법 제12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체포·구속의 정의의 경우 이에 대응하는 ‘수용’이라는 단어로 뒷받침하고 있는 인신보호법 제2조 제1항 본문에 ‘체포·구속과 같은 의미인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법인 또는 개인, 민간단체 등이 운영하는 의료시설·복지시설·수용시설·보호시설에 수용·보호 또는 감금돼 있는 자를 말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 교수는 “비자의입원은 경찰행정적 관점에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위해 행해지는 경우 뿐 아니라 복지행정적 측면에서 치료를 위해 행해지는 경우에도 ‘구속’에 해당한다.”며 “결국 응급입원과 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한 입원은 신체의 자유를 무시하는 법적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안석모 조사국장은 자·타해 위험성 판단의 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해 비자의 입원의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조사국장은 ▲자·타해 위험성 판단 요건을 명확하게 규정 ▲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강제입원의 증거 입증 ▲엄격한 정기적 심사와 퇴원조치 ▲정신장애인의 주거치료시설을 최소 제한적 환경에서 개인의 존엄 등을 보장할 수 있는 조치 추진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안 조사국장은 특히 자·타해 위험성 판단 요건에 대해서 “위험성판단은 비자의입원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며, 일반적 원칙으로 위험성이나 자해나 타해의 정도는 반드시 ‘현존하고’ ‘실재적’이어야 한다.”며 “위험성에 대해 명확하고 확실한 설득력 역시 입증돼야 한다.”고 전했다.

“비자의입원 부추기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조항 폐지돼야”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 역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입원절차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정신보건법 제24조의 폐지를 주장했다.

염 변호사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경우 보호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호의무자인 가족 2인의 동의’와 ‘정신과전의가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기만 하면 6개월간 강제입원당하게 된다.”며 “이러한 절차에서 정신장애인은 이의제기를 하거나 비자의입원 요건이 합당한지 심사를 청구할 방법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정신장애인 입원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환자의 자력에 관계없이 국가에서 입원비를 지원하게 되면서 병원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고, 이에 병원으로서도 환자를 퇴원시키는 것은 수익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밖에도 염 변호사는 ▲통상적 치료과정에 요구되는 법률과정을 무시한 채 보호의무자에게 모든 판단을 일임함으로써 당사자의 의사에 반한 비자의입원 허용 ▲247일 달하는 장기입원 ▲치료비 상담부분을 국가가 부담함으로써 생기는 병원의 수익 구조 등을 문제 삼아 조항 폐지를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16일 국회에는 비자의입원을 개선하기 위한 정신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염 변호사는 개정이 아닌 비자의입원 조항 자체의 폐지가 해답이라고 주장했다.

염 변호사는 “개정안은 비자의입원 요건을 강화하고 최초 퇴원심사 주기를 단축을 명시해 비자의입원과 장기입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며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보호의무자와 해당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만으로 강제입원이 가능한 입원구조가 지속되는 한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이어 “정신장애인의 비자의입원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진단을 위한 입원’과 ‘치료를 위한 입원’을 분리해야 한다.”며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에 해당하는지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입원해서 치료를 할 필요가 있는지 ▲입원치료가 필요하더라도 자의입원이 가능한지 등에 관한 구체적 진단 필요성을 설명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진표 법제이사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의 문제점은 보호의무자가 과도한 권한을 갖고 있다기 보다는 비자의 입원 초기에 심사 기능이 미약해서 보호의무자가 권한 남용을 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정신과 의사의 진단과 보호의무자의 동의라는 양자 결정으로 구조를 개선하고 의무적으로 제3의 기관에서 이를 심사·승인하는 제도로 변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하 교수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비자의입원 과정에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해 후견인의 순위를 우선으로 개선해 법원의 개입을 강화하는 등 단독적 결정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 교수는 “정신보건법에서 명시하는 보호의무자는 민법에 의해 1순위는 부양의무자, 2순위는 후견인이 된다.”며 “하지만 민법에 따라 가정법원이 성년후견제도 상에서 ‘정신질환자의 신상보호에 관해 가장 적임자’라고 지명한 후견인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허점을 발견했다.

이어 “입원 대상자가 성년일 경우 후견인이 개입하게 된다면 결국 법원이 개입하는 과정이 생긴다.”며 “이를 통해 보호의무자의 권한남용을 견제하고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후견인이 선임되지 않은 경우 응급입원이나 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한 입원으로 후견인 선임 과정의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반면 한국정신장애연대 권오용 사무총장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해 보호의무자를 대리한다는 방법은 의문이 있다.”고 문제점을 제기해 성년후견제도와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자기결정권 보호의 우려를 전했다.

더불어 “UN 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정신장애를 이유로 강제적 치료나 수용을 불법화 하고 있다.”며 “강제가 아닌 본인의 자발적 동의를 기초로 의료와 보건서비스가 제공되도록 법률과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정신장애인 가족이 직접 참석해 정신장애인의 치료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미흡함에 대해 호소하기도 했다.

정신장애인 가정의 어머니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어느 부모가 나 좋으라고 자식을 강제입원 시키겠느냐.”며 “정부에서 의료적으로 정신장애인 치료를 지원해주고 정신장애인센터를 지원해준다면 내가 이렇게 했겠나. 아무런 지원도 대책도 없이 결론만 없애는 꼴.”이라고 질타했다.

더불어 실질적으로 법과 제도 개선에 의지를 가져야 할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이 날아들었다. 토론자로 나서기로 했던 복지부 관계자가 참석하지 않아 발제자는 물론 참가자들의 원성이 높았던 것.

한 참가자는 “이번 토론회에 꼭 참여해야 할 사람은 복지부 등의 정부 관계자들인데, 인사말만 하고 자리를 떠나버리니 실질적인 목소리가 전달 될 수가 없다.”며 “실질적 책임자가 없이 우리들의 ‘호소’만 있는 토론회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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