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나전칠기’, 우리 것 알기가 첫 걸음입니다
‘세계적인 나전칠기’, 우리 것 알기가 첫 걸음입니다
  • 최지희 기자
  • 승인 2012.11.13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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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10호 나전장 이형만

우리나라 나전장은 기능별 두 분야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끊음질’, 또 다른 하나는 ‘주름질’이라는 분야입니다. ‘끊음질’은 재료를 얇게 만든 다음 실 같이 잘라 문양을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주름질’은 자개를 문양대로 잘라내는 방법입니다. 제가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주름질’ 분야입니다.

나전이란, 흔히 ‘자개’라 말하는 것의 표준말입니다. 잘 알려진 ‘나전칠기’는 나전과 옻칠을 더해 만든 물건입니다. 작가마다 각자의 제작공정이 있기 때문에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보통 45공정을 거쳐야 한 작품이 완성됩니다.

집 지을 때 설계도를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쓰임새 및 형태를 그리는 과정이 필요하며, 일단 나무가 준비돼야 나전도 붙이고 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백골’이라 해서 소목을 짜는 기능은 없습니다. 기능만 배우면 되는 것 같지만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기초단계인 백골형태와 나전문양에 대한 기본이 없으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미적 감각 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나무에 계속해서 습기가 스며들기 때문에, 뒤틀림과 벌어짐을 막기 위해 삼베와 모시를 옻과 섞어 바릅니다.

나전은 전복·소라껍질을 재료로 쓰는데, 크기나 무늬 등에 있어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신경 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다섯 가지 빛깔이 다 들어가 있는 우리나라 것이 좋지만, 간혹 큰 작업에 있어서는 크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것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2~3년간 장이나 농을 만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수요계층이 적어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제가 어릴 적 중학교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봐야 했는데, 당시 친구들과 놀다가 오른쪽 팔이 골절돼 시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주위의 소개를 받아 공예학교에 입학했는데, 중학교 3학년 오후에는 나전칠기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그때 저를 가르친 선생은 현재 통영에서 옻칠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제가 학생 때 만들었던 작품도 그곳에 있습니다.

또 졸업할 때쯤 일사 김봉용 선생이 학교에서 퇴임해 개인공방을 만들었는데, 운 좋게 김봉용 선생 아래서 나전칠기 교육을 받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나전칠기의 매력을 몰랐지만, 그를 계기로 나전칠기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 ‘외길’로 가다보면 작품이 매매가 돼야 ‘회전’이 이뤄집니다. 저는 이 직업이 좋아서 지금까지 왔는데, 저 때문에 식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보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생활도 이끌어나가야 하고, 많지 않지만 문하생 인건비도 줘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해결되지 않을 때 속상합니다.

반면 나전칠기를 45년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기쁨은 스승의 명성을 그대로 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씩 내가 과연 그럴만한 능력이 되는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스승만큼 더 많이 작업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요즘 젊은이들의 ‘톡톡 튀는 감성’을 배우고 싶고, 제가 갖고 있는 전통공예 기능을 넘겨주고 싶습니다. 인내력과 집중력을 기르고 몇 가지 필요한 부분만 갖춘다면, ‘세계적인 나전칠기’를 꿈꿀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것’을 아끼는 입장에서 나전칠기를 많이 홍보하고 있지만, 우리 것을 좀 더 깊이 알고 깊이 느낄 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눈으로 전통공예를 바라봐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