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나서 ‘장애인 복지’ 만들어야
모두가 나서 ‘장애인 복지’ 만들어야
  • 이지영 기자
  • 승인 2012.11.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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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88서울장애인올림픽 조일묵 사무총장

▲ 88서울장애인올림픽 사무총장 조일묵 회장(가운데). ⓒ한국장애인재활협회
▲ 88서울장애인올림픽 사무총장 조일묵 회장(가운데). ⓒ한국장애인재활협회
▶ 국제교류가 척박했던 시절, 앞장서 우리나라에 ‘세계재활대회’ 유치
우리나라는 1997년 ‘제15회 RI세계대회’를 처음으로 유치했습니다. 당시 약 40개국 나라의 대표가 참석했는데, 우리나라는 장애인을 위해 열리는 국제대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 RI세계대회가 올해 22회째를 맞이했습니다. 올해에도 우리나라에서 개최됐는데, 90주년 기념행사도 함께 열려 반기문 UN사무총장의 특강도 열리는 등 80개국 2,000인이 참여한 규모가 큰 대회였습니다.

▶ 처음 장애계와 어떤 인연을 맺게 됐나?
적십자 봉사를 햇수로 60년 했습니다. 처음 고등학생 시절, 청소년적십자에 입단해서 대학생 때는 청년봉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국 자원적십자 자원봉사 조직을 만들어 전체 회장도 2번했습니다.

봉사를 다니다보면 여기저기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시설 등을 다니면서 특히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어려운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관심을 갖고 봉사를 다니다보니 관심이 커졌습니다.

▶ ‘88서울장애인올림픽’, 우리나라가 장애인에 관심을 가진 계기
1981년이 ‘세계장애인의 해’였지만, 사실 우리나라가 장애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88서울장애인올림픽’이 계기가 됐습니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다르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해 관심도 없고 스포츠는 더욱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원래가 올림픽을 유치한 국가가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을 자동적으로 유치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는 따로따로 소아마비는 소아마비대로, 농아인은 농아인만이, 시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끼리 스포츠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러다가 ICC(Inter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라는 조정위원회를 만들어서 ‘하계올림픽처럼 다 함께 모여서 대회를 개최하자’고 해서 1960년 로마대회서부터 하계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에서 장애인올림픽은 개최한다는 게 관례가 됐습니다.

▶ 당시 사무총장으로 조직위원회를 끌면서 어려웠던 점
우선 사회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이해 인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 장애인 당사자들도 반대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장애인복지가 엉망이고, 선진국도 아닌데 장애인올림픽을 왜 유치하느냐. 장애인을 농락하는 것 이냐’며 반대했습니다. 장애계단체장들은 ‘장애인올림픽을 유치하고 개최하는 데 드는 비용을 나눠주면 더 복지가 잘 될 것이다. 왜 돈을 들여서 행사를 개최하느냐’고 반대했습니다.

또 ‘국제적으로 장애인올림픽에 한 번도 참가도 안한 나라가 무슨 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느냐. 1년에 10~20인씩 기술자·전문가를 보낼 테니 초청해서 준비지도를 받아라’는 압박도 받았습니다. 안팎으로 궁지에 몰렸던 것입니다.

▲ 지난 2일 열린 제22차 RI세계대회 폐막식에서 대형 비빔밥 비비기 퍼포먼스에 참석한 조일묵 사무총장. ⓒ정두리 기자
▶ 문화 활동에 대한 지원
장애인올림픽이 개최하면서 세계적으로 장애인 역사를 바뀌었습니다. 장애인올림픽이 아니면 그렇게 큰 규모의 행사를 개최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해보니, 장애인복지가 오로지 체육만이 아니라는 의식이 생겼습니다. 비장애인과 견줄 수 있고, 장애인 각자가 갖고 있는 ‘소질들을 개발하자’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장애인이 못할 게 없으며, 얼마든지 비장애인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위해 ‘우리가 문을 열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것도 장애인이라고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에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올림픽 끝나고 난 다음, 문학작품전시회와 미술대전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심사위원도 아무나 데리고 와서 심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운보 선생, 이종무 선생, 서양화가의 최고봉 3인을 심사위원장으로 모셔놓고 심사했습니다.

그렇게 문학작품 전시회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상금도 대한민국 미술대전과 같이 500만 원을 줬습니다. 당시 500만 원은 엄청나게 큰 상금입니다. 나중에 이름에 ‘곰두리’를 붙여 ‘곰두리미술대상’이라고 지었습니다.

▶ 장애인복지의 발전을 위한 조언
우리나라가 지금 많이 발전했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 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미국의 장애인복지는 대단합니다. 쉽게 말해서 미국은 장애인 한 사람이 있으면 한 집에 두 사람이 삽니다. 장애인을 보호하고 돌보는 사람에게도 정부가 비용을 지원합니다. 즉, 두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한 집에서 장애인이 한 명이 있으면 ‘기둥뿌리가 빠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가들이 ‘무슨 복지, 무슨 복지’해서 나오는데, 복지도 우선순위를 가려야 합니다.

우선 장애인은 생활이 안 되면 활동을 못합니다. 활동이 안 되면 장애인복지가 되지 못합니다. 장애인은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닌, 사회로 나와서 어울리고 전문분야를 개발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명실상부한 복지가 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그러한 상황으로 가려면 먼 것 같습니다. 지금 생활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을 정부에서도 힘쓰고, 국민들도 계속 도움을 줘야만 장애인복지가 향상됩니다.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들도 활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스포츠 등을 통해서 활동도 시작하고, 나중에 자기 전문분야를 키워 취업해서 직장에도 나가는 등 사회활동을 활발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장애인이 움직여야 하고, 국가는 장애인이 움직이도록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렇게 생활문제도 해결해야 장애인복지가 명실상부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