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정신병원서 사망한 김지승 씨 노동력 인정해야…1심 판결 원고 패소부분 취소

지적장애인의 노동력을 인정하는 국내 첫 판례가 나왔다.
그동안 지적장애인 노동권과 관련한 사건서 노동력을 인정받아오지 못했던 관례를 깨는 판례여서 큰 이목을 끌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김지승 씨 사망사건’과 관련해 ‘(김지승 씨가) 지적장애 2급 장애인으로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학교졸업 후 경제활동에 참가해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보인다’며 국가와 성남시, ㅅ의료재단에게 재산적 손해 및 위자료를 배상·지급하라고 지난 1월 20일 판결했다.

김지승(남·당시 21세·경기도 오산시) 씨는 2001년 8월 29일 오전 11시 실종돼, 31일 오후 7시 30분 경 성남시 분당구 율동공원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김 씨의 부모는 화성경찰서 오산파출소에 실종신고를 했으나, 김 씨를 발견한 분당경찰서 장안파출소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무연고자 증명서를 작성해 분당구청으로 인계했다. 분당구청은 당일 밤 김 씨를 오산의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고, 2007년 5월 17일 김 씨는 보호실 관찰구에 목이 끼어 ‘경부압박에 의한 심폐부전’으로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를 위한 공익소송지원단(이하 공익소송지원단)’을 꾸려 2009년 6월 29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을 진행했다.

▲ 김씨가 행방불명 돼 사망할때까지 6년동안 수용됐던 오산의 한 정신병원. 앞동은 진료실과 노인요양시설, 뒷 건물이 정신병동이다
▲ 김씨가 행방불명 돼 사망할때까지 6년동안 수용됐던 오산의 한 정신병원. 앞동은 진료실과 노인요양시설, 뒷 건물이 정신병동이다

5세 어린이보다 지능지수가 낮기때문에 일할 능력 없다?

국가·성남시·ㅅ의료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1심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가 산하의 경찰관 및 성남시가 신원 확인 의무를 다하지 못해 김 씨가 부모에게 인계되지 못한 점’, ‘설백의료재단이 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고, 근무 태만 및 정신보건법(시행규칙 제7 제1항 별표2)을 위반한 점’ 등을 인정한다.”며 김 씨의 부모인 원고 두 명에게 정신적 손해배상으로 국가·성남시는 각자 각 500만 원, 설백의료재단은 각 1,355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재산적 손해에 대해서는 ‘김 씨가 5세 어린이보다 떨어지는 지능 지수를 갖는 지적장애 2급 장애인으로서, 취업 가능 시점부터 도시 일용노동자 임금 상당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원고들의 이 부분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공익소송지원단은 2010년 6월 8일 ‘김 씨의 노동력을 0원으로 판결한 것은 부당하다’며 항소를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은 ‘국가·성남시는 각자 각 338만4,981원, ㅅ의료재단은 각 2,086만5,951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을 맡은 로피플 설창일 변호사는 “1심에서 법원은 진료기록을 근거로 ‘5살 나이의 지적 수준이니 병원에 가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일하지 못할, 노동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기각했다.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승소했지만, 이 부분은 어떻게 보면 승소한 게 승소한 게 아닌 내용이었다. 무직이든, 미성년자든, 사람이라면 누구든 도시 일용노동자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법에서 인정하고 있다. 김 씨도 사람이고, 장애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일을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노동력에 대한 소송으로 맞닥뜨리게 됐다.”고 밝혔다.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공익소송지원단은 지난해 7월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익소송 승소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서울지방지법은 지난해 5월 김지승 씨가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관과 해당 시 공무원의 신원확인 의무 부주의로 인해 지적장애가 있는 김씨가 부모에게 인계되지 못했다.”라며 국가와 성남시에 각각 500만원, 정신병원에 1천355만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국가와 정신병원은 항소를 포기했으나 성남시만 항소를 제기했으며, 공익소송단은 ‘김씨의 노동력을 0원으로 판결한 것은 부당하다’며 재판부를 상대로 항소해 지난 1월 20일 승소했다.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공익소송지원단은 지난해 7월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익소송 승소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서울지방지법은 지난해 5월 김지승 씨가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관과 해당 시 공무원의 신원확인 의무 부주의로 인해 지적장애가 있는 김씨가 부모에게 인계되지 못했다.”라며 국가와 성남시에 각각 500만원, 정신병원에 1천355만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국가와 정신병원은 항소를 포기했으나 성남시만 항소를 제기했으며, 공익소송단은 ‘김씨의 노동력을 0원으로 판결한 것은 부당하다’며 재판부를 상대로 항소해 지난 1월 20일 승소했다.

김지승 씨 사망사건, 우리사회 장애인 인식 경종 울리는 판례 될 것

설창일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우리사회 장애인 인식에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설 변호사는 “성남시에 ‘김지승 씨가 분당구청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조회를 안 했느냐’고 묻자, ‘보통 그런 사람들이 자기 이름 말하는데, 그걸 어떻게 다 믿느냐’는 식이었다. 이름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조회라든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신병원의 운영방식 등에 대해서도 설 변호사는 “김 씨처럼 무연고자 처리돼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주민번호 대신 행려번호가 새로 부여된다. 그때부터는 전산조회를 해도 찾을 수 없는 ‘블랙홀’이 되는 것.”이라며, “김지승 씨 사건과 별개로, 한 지적장애인이 정신병원에 너무 오랫동안 격리된 것에 대해 법원이 정신보건법 위반 등 일부 인정한 판례가 있다. 정신병원은 입소하는 사람 한 명당 지자체의 지원 등 수익이 생기는 운영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들어온 사람은 내보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사회가 장애인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고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좀 더 김지승 씨의 상태를 알아보고 관련 단체와 연계해 의사소통을 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면 가족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근본적으로 장애인을 격리와 통제의 관점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현재 구조에서는 (실종된) 사람을 발견했더라도 신원 확인 조치 및 지문 조회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상황인데다, 복지기관이나 단체에 의뢰해 상담하는 등의 절차 또한 사문화돼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이런 것들을 복구하거나 활성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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