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진 씨의 어머니 이원옥(오른쪽) 씨가 연세대학교 김한중 총장(왼쪽)으로부터 명예졸업증서를 수여 받은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11 welfarenews
▲ 신형진 씨의 어머니 이원옥(오른쪽) 씨가 연세대학교 김한중 총장(왼쪽)으로부터 명예졸업증서를 수여 받은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11 welfarenews

온몸의 근육이 마르는 ‘척추성 근위축증’, 목 아래는 마비됐으나 공부 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신형진(29, 지체장애 1급)씨의 감동이야기가 화제다.

2002년 신씨가 선택한 학문은 컴퓨터과학과. 당시만 하더라도 안구마우스 등 보조기기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컴퓨터보다는 순수 학문 쪽을 선택하기를 바랐으나, ‘프로그래밍에 도전하고 싶다’는 그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입원과 휴학,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등으로 학업을 중단할 뻔했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지만, 신씨의 의지와 언제나 그의 곁을 지켜준 어머니 이원옥 씨가 있었기에 지난달 28일, 9년여 간의 캠퍼스 생활을 마무리하는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당분간 쉬면서 체력을 보충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설계할 예정이라는 신씨는 “나 처럼 어렵게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감회가 남다를 텐데.

“2002년에 연세대에 입학해 9년 만에 드디어 학사모를 쓰게 됐다. 한편으로는 무사히 졸업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캠퍼스를 돌아다닐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9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그 동안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사고로 오랜 기간 동안 입원하느라 휴학하기도 했고, 수업 도중에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조퇴할 때도 있었다. 솔직히 무사히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모든 학부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되다니 내 자신도 놀랍고 벅찬 마음이다.”

- 지금의 학교와 학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학창시절 별명이 ‘연세대 호킹’이라고 들었는데, 장애로 인해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학교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중간 중간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갈 수 없을 때다. 근육병은 호흡이 약하기 때문에 감기나 폐렴에 걸리면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몸이 안 좋으면 아무리 중요한 수업이 있다 할지라도, 친한 친구들과 모임이 있다 해도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그럴 때가 제일 답답하고 속상했다.

대학 입학을 준비하면서 어느 학교로 갈지 많이 고민했다. 당시에는 다른 대학에 비해 연세대가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기독교 집안이다 보니 기독교 이념을 갖고 있는 연세대가 마음에 들어 선택하게 됐다.

컴퓨터로 진로를 정한 것은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으로 뭔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데 푹 빠져있었기 때문에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컴퓨터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정했었다. 사실, 어머니와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안구마우스’라는 것을 몰라서 내가 컴퓨터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셨기 때문에 컴퓨터보다는 수학 같은 순수 학문 쪽으로 가길 바라셨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고, 내가 원하는 컴퓨터 쪽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 신형진(가운데) 씨가 졸업앨범 사진 촬영을 위해 지난 5월 같은 과 동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1 welfarenews

- ‘척추성근위축증’은 어떤 질환인지 궁금하다. 머리 아래로는 움직이기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과제나 시험은 어떻게 준비했나.

“내 정확한 병명은 ‘척추성 근 위축증 (Spinal Muscular Atrophy)’, 일명 SMA라는 근육병 이다. 이 SMA는 신경 근육 질환의 하나로 2살 미만 유아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되는 병이다.

내가 태어난 지 6개월 되었을 무렵에 평소 알고 지내던 할머니께서 ‘내가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며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해 병원을 찾았으나,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SMA를 판별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뇌성마비’인 줄 알고 있었는데, 미국병원에 계신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거기에서 SMA 판명을 받았다.”

“SMA는 온 몸의 근육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힘을 쓸 수 없게 되고, 심하면 제대로 앉지도 못하게 되는 매우 위험한 병이다. 무엇보다 이 병이 무서운 점은, 호흡 근육이 약해져서 항상 호흡에 위협을 느끼며 생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병으로 인해 지금 나는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호흡도 힘들게 하고 있다. 밤에 잘 때는 호흡기를 착용해야하며, 24시간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어야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나와 같은 근육병 환우들 대부분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누워 지내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옆에 앉아서 컴퓨터를 대신 클릭해줘야 했고, 책을 읽을 때도 누군가가 옆에서 한 장 한 장 넘겨주어야 공부할 수 있었다. 도와주는 사람도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도 너무 지루하고 답답했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간 후, 우연히 안구마우스를 알게 되면서 내 생활은 크게 달라졌다.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내가 안구 마우스와 화상키보드를 이용해 컴퓨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학교에서 내준 과제나 팀 프로젝트를 할 때도 안구마우스를 사용하여 컴퓨터로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할 수 있게 됐다. 프로그래밍 과제와 수학 과제는 물론, 책도 마음대로 볼 수 있게 됐다. 연세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는 내가 읽을 책들을 가져다주면, 스캐닝해서 컴퓨터 파일로 제작해 나에게 보내준다. 그 덕분에 책을 보며 하는 시험공부도 컴퓨터로 혼자서 할 수 있게 됐다.”

-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컸지만, 보조기기 덕분에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기기들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소개해 달라.

“나는 손가락도 못 움직일 정도로 힘이 없는 상태라서, 컴퓨터 한번 하려면 항상 누군가가 옆에서 대신 눌러줘야 했다. 그러다가 4년 전 ‘에이블몰(www.ablemall.co.kr)’을 통해서 안구 마우스를 알게 됐다. 나처럼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으면 얼마든지 혼자서 마음껏 컴퓨터를 할 수 있도록 되는 제품이다. 작은 카메라와 적외선 센서 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들을 모니터에 부착만 하면 눈동자의 움직임을 쫓아서 마우스 커서가 따라 움직인다.

클릭하고 싶은 지점을 바라보면서 눈만 깜박이면 클릭이 되고, 전용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오른쪽 클릭, 더블 클릭, 드래그도 가능하며 화상키보드를 이용해 타이핑도 가능하다. 안구마우스를 구입한 이후로 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마음껏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요즘에는 국립재활원의 도움으로 대중 앞에서 발표할 때 음성변환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내 실제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잘 안 들리지만, 노트북에 안구마우스를 연결해서 눈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조작하고, 음성변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컴퓨터 음성으로 말하는 방식을 써서 발표할 수 있었다.”
 

9년 만에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하는 신형진(왼쪽) 씨와 어머니 이원옥 씨는 학위수여식에 참가해 졸업 축하를 받았다. ⓒ2011 welfarenews
▲ 9년 만에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하는 신형진(왼쪽) 씨와 어머니 이원옥 씨는 학위수여식에 참가해 졸업 축하를 받았다. ⓒ2011 welfarenews

- 지금의 신형진 씨가 있기까지에는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가 신씨의 통학을 날마다 거들었다고 들었는데, 어머니께서 겪은 고생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있었다면 어떤 게 있는지 알고 싶다. 또 별도의 활동보조서비스는 이용 안하는지도 궁금하다.

“나의 경우는 근육병으로 인해 어느 순간 호흡 곤란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맡아서 도와주기엔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그럴 때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되는데 어머니 외에는 제대로 아시는 분이 없으셔서 항상 어머니께서 옆에 계셔야 했다. 그러다 보니 21년간의 학교생활 내내 어머니 혼자서 나를 데리고 학교를 다니셨다.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께서도 연세가 드셔서 나를 안고 들어 올리는 것도 힘에 부쳐 하셔서, 지난 마지막 학기에는 나와 어머니, 활동보조인 이렇게 셋이서 함께 통학했다. 나 때문에 어머니께서 하신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특히 폐렴 등으로 아플 때는 어머니께서도 간호하시느라 밤잠을 설쳐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드시다. 그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내가 건강하게 생활해야 한다.(웃음)”

- 졸업 후의 행보가 무척 궁금하다. 잘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에서 중증장애인이 취업해 일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인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당분간은 그동안 학교 다니느라 나도 어머니도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쉬면서 체력을 키우려고 한다. 아직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못했지만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싶다.”

- 지금까지 함께 학교를 다니며 어머니께 하고 싶은 감사의 인사말.

“어머니께서는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까지 21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를 안고 등·하교 시켜주셨고, 아플 때마다 옆에서 밤새워 간호해주셨다.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졸업식이 가능했다.”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다 갚는 것은 제 평생에 불가능할 겁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늘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 건강하게 생활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학업에 매진 중인 중증장애인 후배 학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앞에서 얘기 했듯이 나와 어머니는 과연 ‘내가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까’라고 수도 없이 걱정했다. 중간 중간 아파서 입원하고, 폐렴으로 고생할 때마다 절망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절대 포기하지는 않았다. 힘들 때마다 기도하고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 현재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반드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을 찾으셔서 하시길 바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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