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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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점자는 일반책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다양한 대체자료를 출판하는 곳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시각장애인으로 1969년 사재를 털어 한국점자도서관을 설립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한국점자도서관을 이어받아 일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21세기에 맞는 지식정보를 전달할 방법을 찾다가 도서출판 점자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이 일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성인이 됐을 때 아버지께서 강권적으로 나오셔서 일을 하게 됐는데, 아버지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순간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왕하려면 잘하자’,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딸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힘들지만 일하는 보람이 있고, 인생을 가치 있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 늘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점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책을 보급하는 데 도서관은 한계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제는 전통적인 점자도서·녹음도서로는 이 시대에 부응하는 시각장애인의 삶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점자도서관의 첫 번째 목적은 전국 모든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활한 보급이 이뤄져야 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출판사가 설립돼야만 원활한 보급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또한 자연스럽게 사회적 기업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도서출판 점자가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점자도서관은 다양한 문화교육프로그램을 전문으로 하는 도서관의 본질적인 기능을 더 많이 하고 있고, 도서출판 점자는 전문적으로 책을 출판하고 보급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전국에 전문 점자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관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시각장애인복지관이나 장애인종합복지관 안에 서비스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점자도서관에는 점자도서를 비롯한 녹음, 촉각 등 6만여 권이 있습니다. 지역에서 이용하지 못하는 책들을 한국점자도서관에서 이용하기 때문에, 독서에 대한 욕구가 지역에서 소화되지 못하는 사람 등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3,000여 명에 불과합니다.

이미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에서는 오래 전에 일반 독서에 장애를 겪는 사람을 독서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노환, 신체적 장애, 학습장애 및 난독증 등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지적장애인, 다문화 등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까지 해당됩니다.

도서출판 점자는 독서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 Free)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건축학적 입장에서 장애가 없는, 무장애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정보에서도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책과 비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책이 따로 구별돼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읽고 정보를 공유하는 배리어프리책을 만드는 게 큰 목적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 시각장애인 당사자와 비장애인인 가족은 보는 것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라도 점자책과 묵자책이 따로 있으면 그에 대한 공유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반 그림책에 점자 라벨을 붙여 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사물을 설명할 때 제일 어려웠습니다. 비시각장애인은 ‘물고기 같아’, ‘코끼리 같아’라고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시각장애인은 알기 어렵습니다.

사물의 개념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는 뭔가 만지고 느끼는 게 필요합니다.
‘햇님 달님’이라는 전래동화를 보면 엄마가 떡 광주리를 이고 간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떡 광주리를 이고 가는 모습을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이스아이 바코드가 있어 음성으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촉각·감각책은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도서출판 점자가 전문가의 협조를 얻어 창의적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노인을 위한 큰글자책에도 보이스아이 바코드가 있습니다. 유럽에 가보니까 큰글자책이 새로운 것에 몰려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20·30대 젊은이들도 큰글자책이 읽기 편했기 때문에 이용했지만, 전자책 시대로 소형화되면서 큰글자책은 노인만 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시작하고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큰글자책은 꼭 노인이 아니더라도 노환이 오기 시작한 사람에게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보이스아이를 통해 음성으로도 들을 수 있도록 해 여러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부 다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제작단가가 굉장히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획단가비는 빼고 독본으로 만드는 단가비만 책정하는데, 그래도 가격이 비싸서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장애인이 개별적으로 구입할 경우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에 30~60%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고, 기관의 경우에만 정가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일반 서점에서도 구입이 가능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도서보다 오디오북과 같은 콘텐츠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중도 시각장애인의 경우 점자를 읽기 어렵기 때문에 오디오북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음성도서는 지나가버리고 말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감흥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음성으로 사물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시대가 발전해 기계화 작업을 통해 감각까지 느낄 수 있기 전까지는 절대적으로 ‘만지는’ 책이 오디오북과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책의 내용을 정말 감동적으로 느끼고 싶으면 인쇄매체를 이용해야 합니다.
감각책이나 배리어프리책은 함께하는 책이자 사물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고, 손끝으로 감동을 느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책 중에 어느 작품을 선정할 건인가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한국점자도서관에서 정보조사를 하기도 하고, 관련 논문이나 소식을 통해 목록을 작성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목록이 완성되면 최종적으로 전문가들의 협조를 받아 선정하게 됩니다.

특히 큰글자책 같은 경우에는 출판사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판권을 사와서 제작하는 것으로 출판사 및 지은이가 허락해야 가능합니다. 선정된 책 중에 허락되는 책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지적장애어린이나 청각장애어린이를 위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수화동화라고 해서 수화그림을 삽입해놓은 책 등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어느 곳에 사는, 어떤 유형의 장애인이라고 할지라도 모두 함께 책 읽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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