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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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UN에서 세계장애인의 해를 선포하고 여러 가지 부속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국제적으로 장애인의 삶과 생활 현장을 좀 더 분명하게 부각시키겠다는 의지가 있었으므로 세계장애인의 날을 정했죠.

세계장애인의 날을 정하려면 UN사무총장의 재가도 얻어야 하고, 세계 각 국가에서 하루를 장애인의 날로 정하는 것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즉, 세계장애인의 날이 정해져서 효력이 발생하고 의미 있게 되려면 각국의 합의하에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것이죠. 때문에 세계 사람들이 장애인의 문제를 주목하는 데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한국인 최초로 UN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이 됐습니다.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은 4년이 임기며, 총 18명의 위원이 있습니다. 위원들은 각 국가가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이행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심사합니다.

2008년 UN에서 채택, 2009년 1월 한국에 세계장애인권리협약을 채택한 뒤 한국도 장애인권리위원회의 후보를 낼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지난 9월 26명이 경합해 일곱 시간 정도 투표를 거쳐 제가 피선됐습니다. 국가의 지원으로 7월 보름, 8월 보름 정도 UN에서 머물며 선거운동을 했죠.
그런 결과로 얻어진 것으로 제가 탁월해서 위원이 됐다고 하기 보다는, 한국이 좋은 나라라서 피선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UN장애인권리협약은 약 50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장애인의 권리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사회보장권, 교육권, 의료권, 접근권, 이동권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장애인권리협약을 주장한 이유는 구속력이 없는 추상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지나가고 말았기 때문에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죠.

장애인권리협약이 상정되는 것에 대해 각국이 다른 의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장애인권리협약이 국제법이기 때문에 UN에서 채택되면 국내법을 거기에 맞춰서 개정해야 됩니다. 법만 바꾸는 게 아니라 예산을 책정해서 이행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도 따르고, 여러 가지로 많이들 피하려고 했습니다.
이 협약이 통과될 수 있도록 각국 장애계단체와 장애인 당사자들이 많은 활동을 펼쳤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 6억5,000만여명의 장애인이 있습니다. 그 중 2/3인 5억여명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빈곤 문제는 심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장애인의 권리 실현을 위해서는 빈곤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사람대접을 받는 것이지, 배고픈데 인권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장애인의 빈곤퇴치문제와 인권문제는 같이 가야 된다고 말합니다.

인권의 문제는 국제적인 담론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드는 등 세계적인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차원에서 상당히 제도적으로 애쓰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나 편견은 깊게 뿌리 내려있습니다. 이제 바뀔 때가 됐는데도,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은 인권에 대한 교육 및 홍보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는 UN장애인권리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는가에 대해 정부는 ‘잘한다’고 답할 것이고, 장애인 당사자는 ‘아직도 멀었다’고 답할 것입니다. 둘 다 맞는 이야기죠. 법으로는 잘 돼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 이행되기 위해서는 모든 제도가 따라줘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법은 있지만 예산이 따라주지 않고 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이죠.

또한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우선순위와 장애인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충돌이 일어나고, 문제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 장애인권리협약의 핵심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죠.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인정하고 지지해줘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앞장서서 법의 중요성을 인정해줘야 장애인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향상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다섯 살 때 이북에서 내려오다가 폭격에 다쳐 의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전쟁이 낳은 결과이므로 자연스럽게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대학 때는 4년 동안 편견으로부터 자유라는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죠.

누구는 장애 때문에 평생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누구는 장애가 있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장애 때문에 특별히 해를 입은 것이 없고, 하나의 삶의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불편할 뿐, 실전과 삶의 문제인 것이죠. 살다보면 신체적 장애 외에도 수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를 극복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묘미가 있죠.

중앙아시아나 전쟁이 있는 나라의 장애인을 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한국 장애인이 모두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괜찮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상당히 있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들이 나서서 외국에 있는 가난한 장애인을 위해 국제적으로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일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정부에서 볼 때도 장애인은 때가 오면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국제적인 역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생각을 못해서 못하는 것이죠. 제가 한 일,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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