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대전점자도서관은 '제80회 점자의 날'인 11월 4일을 하루 앞두고 중구 산성동 시립산성종합복지관에서 회원과 관계기관장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 및 문화행사를 펼쳤다.

이날 가진 기념식에는 대전시의회 곽영교 의원을 비롯해 대전맹학교 김원준 교장과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대전직업능력개발센터 박광순 원장, 대한안마사협회 대전시지부 김대한 회장, 대전시각장애인연합회 이재화 회장, 대전시청 한현택 장애인복지계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립 연정국악원의 판소리 한마당이 행사 분위기를 돋궈주었다.

이날 행사에서 김영강 점자도서관장은 기념사를 통해 “현대사회는 정보에 뒤지지 않는 사람이 가장 먼저 소망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라며 “우리 회원여러분들도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을 축적해 정안인들을 능가하는 인물이 되자”라고 말했다.

이날 박성효 시장은 해외출장으로 참석치 못했고 김연풍 문화예술과장이 대독한 축사에서 “여러분은 신체적 불편함은 있겠지만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을 살려 자기 개발에 힘써 달라”라고 전했다. 또한 “우리 시에서도 여러분들을 위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서 김광호 도서관 상임이사는 도서관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김영강 관장으로부터 공로패를 받았고 유성구 전민동 지현경씨가 자원봉사자 감사패를 김태경, 김문자, 추미자, 김웅학, 구옥자씨 등이 1년간 점자책을 가장 많이 읽은 다독상을 수상했다.

이날 펼쳐진 노래자랑, 윷놀이, 점자쓰기 등의 문화행사는 화합의 한마당을 연출했다.

점자는 1808년 프랑스의 육군장교 바르비에가 야간전투에서 군사용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만져서 읽을 수 있는 점으로 된 문자를 생각해 냈다.

점자는 군사용 야간문자에 기초한 것으로, 1829년 파리맹학교에 재학중이던 루이 브레일에 의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점자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시각장애인의 지식교육이 가능해 졌다.

루이 브레일은 세로 6줄, 가로 2줄씩 12점으로 만들어진 야간문자가 손끝으로 한꺼번에 읽기가 너무 불편해 이를 반으로 줄여 세로 3줄, 가로 2줄씩 6점으로 새로운 점자체계를 만들었다.

그 후 6점식 점자는 1854년 파리맹학교에서 시각장애인용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고, 1878년 각 국의 시각장애인 교육자들 회의에서 공인 받음으로써 전 세계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문자로 발전하게 되었다.

점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목편문자를 비롯해 매듭문자, 양각문자, 침 문자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시각장애인용 문자가 교육에 응용돼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점자체계는 조선훈맹점자로 1894년 평양에서 시각장애인 교육을 시작한 미국인 선교사 로제타홀이 뉴욕식 점자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었다. 그러나 조선훈맹점자는 세로 2줄, 가로 2줄씩 4점으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공인된 브라이유 6점식 점자체계와 맞지 않아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13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설립된 제생원 맹아부의 초대 교사인 송암 박두성은 제생원 학생과 일반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브라이유식 한글점자 연구를 시작하여 1921년 6점식 한글점자를 내놓게 되었다.

그 후 송암은 수 차례의 수정·보완을 거쳐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이란 이름으로 한국어점자를 발표했고 시각장애인들은 이 날을 점자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1993년에는 한국점자연구위원회가 발족돼 개정한국점자통일안을 마련해 한글점자, 고문점자, 수학 및 과학점자, 점자악보, 컴퓨터점자기호, 점자국악보를 개정했으며 13개국의 외국어 점자를 수집·정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 위원회는 컴퓨터 분과, 수학 분과, 음악 분과별로 위원회를 두고 여러 차례 공청회를 거쳐 11월 4일 개정한국점자통일안을 발표했고 당시 문화체육부 국어심의회 심의를 거쳐 어문규정으로 확정하고 1997년 12월 17일 한국점자규정을 고시하게 됐다.

한편 정부는 훈맹정음을 창안한 송암 박두성의 공적을 기려 1997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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