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시와 문학이란 무엇인가? 70년대 중반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시와 문학은 경이의 세계였다. 그 당시 막 간행되었던 민음사판 「젋은 시인선」과 그것들에 덧붙여진 해설들은 국어 교과서의 공식적 세계에 익숙해져 있었던 나에게 고스란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생각해 보라. 교과서의 세계에 갇혀 있다가 이제 막 풀려날 준비를 하고 있던 한 예민한 감성이 황동규와 정현종, 고은과 이성부, 김현과 김병익 들을 읽게 되었을 때의 그 충격을.

그러나 그 언제부터인가 나는 시와 문학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서서히 잃어 버리기 시작했다. 나의 내부에 음험한 욕망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타협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순결한 존재로 받아들이기를 포기할 때 더 이상 시를 잃을 수 있을까? 연세대 뒷산인 안산의 봉원사 밑에서 현재 살고 있는 마포 집으로 이사올 때 나는 200여권 되던 시집들을 모조리 버려 버렸다. 그 이후 더 이상 시집을 사지 않았으며 시를 잃지도 않았다. 더 이상 시인들의 삶에 대해 감동하지도 않았다. ‘유용하지 않은 것들’, ‘쓰여지지 않은 것들’이 경멸받는 이 시대에 시를 쓰다니. 어리석은 자들!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타락해 가는 중임을. 투박하고 서툴렀으되 순결했던 젋은 날의 표정을 서서히 잃어 버리고 있음을 나는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힘든 시대에, 뇌성마비라는 육체적 장애를 딛고 수십 권의 시집을 간행한 송명희 시인의 이야기를 읽을 때, 그리고 뇌졸중으로 1급 지체장애인이 된 뒤 수년째 휠체어(둥근 다리)에 의지하면서도 창작시집 둥근 다리를 펴낸, 둥근 다리 시인으로 통하는 부산의 시인 김갑진 씨의 이야기를 읽을 때, 28살에 대학에 입학한 2급 중증 장애인으로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하고 시집까지 펴낸 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 최정민 씨의 삶을 읽을 때, 그리고 선천성 장애로 사지를 거의 못 쓰는 데다 말도 못하면서도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자신의 감정을 시로 표현한, 목포의 소망장애인복지원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이대우 씨의 삶을 읽을 때, 나는 그들이 이 시대의 그리움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시와 문학이, 투르니에 식으로 말하자면, 바로 그들의 하늘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내겐 책과 관련된 아주 아름다운 경험이 하나 있다. 1981년 12월 어느날 편지를 하나 받았다. 파리의 국립시각장애인학교에서 온 편지였다. 글자를 자동인식해 점자로 인쇄하는 기계를 마련했는데, 첫 책으로 내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교장은 내가 직접 가서 책을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다. 난 기꺼이 학교를 방문해 점자책을 직접 나눠줬다. 그런데 보통 책을 주면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이면서 받는데, 이 아이들은 점자로 된 내 책을 받아들고 하늘을 보며 손으로 책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책의 형태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아이들에게 책은 하늘과 같은 것이었다. 책은 하늘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투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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