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성명서

- 현장 경찰관에 의한 정신장애인 강제 행정 입원 조치를 반대한다!

‘여자라서 죽였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

지난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여성을 추모하는 여성들의 포스트잇이 물결을 이룬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과 주류 언론은 피의자의 정신질환 병력을 언급하며 이 사건의 원인을 여성 혐오가 아니라 ‘정신 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보고 있다.

지난 23일 강신명 경찰청장(이하, 강 청장)은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여성 범죄 및 묻지마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 등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강 청장은 “한국에 혐오범죄는 없다.”라고 발언하면서 △범죄 위험 소지가 있는 정신질환자를 판단하는 체크리스트를 11월 중에 완성하고 △현장경찰관이 의뢰하면 의학적 판단을 거쳐 지자체장이 입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며 △심지어 본인이 퇴원을 원해도 거부하는 조치까지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비단 이런 대책이 아니라도 한국의 정신장애인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9일 김춘진 19대 국회의원은 2014년 한국의 강제입원율은 정신의료기관 전체 입원환자수의 67.4%라고 발표했다. 이는 프랑스 12.5%, 영국 13.5%, 독일 17.7%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정신질환자의 3분의 2가 강제입원이며, 정신질환자의 평균재원기간은 247일로 스페인 18일, 독일 24.2일, 이탈리아 13.4일, 프랑스 35.7일, 영국 52일과 비교하여 매우 높다. 그런데, 강 청장은 경찰의 행정입원 신청 요구권이 명시된 정신보건법 개정안을 악용해 행정입원에 대한 경찰 개입을 강화하고 강제입원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은 정말로 위험한가. 2011년 대검찰청 범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 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장애인의 10%이다. 보건복지부가 2월에 내놓은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자료에서도 ‘정신 질환 중 공격성과 잠재적 범죄를 일반적인 증상으로 하는 정신질환은 반사회적 인격장애 한 가지뿐’이며 ‘조현병 환자들은 범죄와 폭력의 위험성이 매우 낮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나와 있다. 강 청장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실체가 없는 망상을 혐오로 단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실체도 없는 정신장애인 범죄 가능성을 들먹이며 이들에 대한 공포를 확산하고, 정신장애인을 범죄자로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부적절’하다.

경찰청의 범죄 예방 대책은 사회에 만연한 여성 차별과 혐오 문제를 정신장애인에게 뒤집어씌워 어물쩍 넘기려는 것이다. 경찰청은 정신장애인 강제 입원을 강화하고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억압하는 ‘부적절’한 범죄 예방 대책을 중단하라!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정신장애인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고, 장애인을 비롯한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를 예방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2016년 5월 25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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