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임성현 회장

저는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 임성현입니다. 우리 협회는 전국적으로 장애인생활시설, 장애인주단기보호시설, 공동생활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설은 전국에 1,700여 개 정도가 있으며 시설에서 생활하고 그곳을 이용하는 장애인분들은 3만 6,000인 정도 계십니다. 또한 장애인분들을 돕는 직원은 1만 6,000인 정도 됩니다.

저희 협회는 시설을 짓기 위해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고 외국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인권문제, 삶의 질에 대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시설의 입장을 정부나 국민에게 알려주고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희는 시설에서 생활하고 거주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인권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일부 장애인복지시설 또는 미인가 시설에서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종종 기사로 보도됩니다.

저희는 장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협회 내에 인권지킴이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인권 강사 또한 자체적인 심화 과정을 통해 배출하고 있습니다. 강사를 통해 각 시설에 인권교육을 하고 원장님들을 비롯한 직원 전체가 인권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현장의 사례문제 즉, 법과 현장의 괴리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사례집으로 만들어 현장의 현실을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관해 연구하고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복지 분야에서 봉사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세우신 사회복지법인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6.25 당시 이북에서 월남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양신학교라는 오래된 신학교를 다니시다 월남하셔서 남쪽의 전쟁고아들을 보살피시다 1954년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전쟁고아들을 양육·교육하고 사회로 복귀시켰습니다. 1970년대에는 지적장애인이면서 고아인 사람을 위한 시설이나 교육체계가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복지법이 만들어진 것은 1981년도로 아버지께서는 그 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장애인을 돕는 일을 하셨던 겁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영향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이 분야에서 일한 지 25년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15년 전 목사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습니다. 1950년도에는 봉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었고 종교인이나 뜻이 있는 분들이 시작한 봉사가 우리나라 사회복지법인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많은 분의 지지로 한 달 반 전, 회장에 당선됐습니다. 그와 동시에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중 장애인의 복지예산이 지방으로 넘어간 것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장애인 복지예산이 지방으로 넘어간 것은 2005년도로 현재 8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역에 따라 복지예산은 불균형하게 책정돼 있습니다. 때문에 충분한 예산을 배정받은 지역에서는 장애인 복지 사업을 현실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예산을 배정받지 못한 지역에서는 장애인 복지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전도 같은 곳은 예산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지방으로 넘어간 장애인 복지예산을 중앙정부로 환원시키는 일이 저의 첫 번째 과제입니다.

이 밖에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사회복지법인에 떠넘기다 보니 수익사업에 있어 많은 사회복지법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은 후원금 형태로 수익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복지법인이 운영되려면 후원금을 통해 법인을 유지하고 운영해야 하는데 정부는 이런 문제를 사회복지법인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사회복지법인 각 각의 책임을 재규정하고 재확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담감도 많이 있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계속 준비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8년 전 장애인복지거주시설은 설립이 거의 안 된 상태였습니다. 이유는 개인의 재산으로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해 시설을 짓는다 하더라도 지역에서 운영비를 지원해 주지 않으면 시설을 설립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은 신규 시설 설립이 거의 중지된 상황입니다.

장애인복지거주시설은 특정 시도나 시군에 몰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장애인복지시설이 들어오면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게 현실입니다. 때문에 이런 시설들은 산이나 섬처럼 외딴 곳으로 밀려 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경기도 양평과 같은 수도권 외곽 지역에는 시설이 5, 6개나 몰려있고 이천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거주 지역에 시설이 없으면 장애인은 자신이 살던 곳을 벗어나 시설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야 합니다. 다른 지역의 시설로 옮겨 가라도 기존의 시설 이용자들은 다른 지역의 이용자를 보며 ‘왜 우리 도민도 아닌데 우리의 예산을 이 사람을 위해 써야 하냐’며 불만을 품기도 합니다. 이처럼 현재 사회복지의 불균형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중앙정부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저희는 지금 그렇게 주장하고 있고 당연히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끊임없이 말로 뛰며 현장과 소통하는 활기찬 협회를 만들기 위해 몇 가지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으로 이양된 예산을 중앙으로 환원하는 것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시설은 주부식의 경우 1,400원 정도만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물가는 치솟고 있는 상태고 심지어 김밥 한 줄을 먹으려고 해도 1,500원 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몸도 허약하고 중복 장애를 가진 장애인의 한 끼 식사에 1,500원밖에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올해부터 특수학교 학생의 한 끼 예산은 3,500원으로 증액됐습니다.

저희 시설에 있는 대부분의 장애인 친구들은 중증장애, 지적장애이면서도 다른 신체적 장애와 질병이 함께 있습니다. 그러한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거주하는 어떤 사람보다 영양적인 면과 의료상에서 더 관리를 받아야 하는 데 필요에 비해 적은 예산을 지원 받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이 분야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절은 부천혜림원이라는 지적장애인시설에서 원장을 지낼 때였습니다. 그곳의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무연고자였습니다. 아니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권자 즉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가 주로 저희 혜림원에서 생활했습니다. 혜림원은 그들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이 비록 지적장애인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인연이 닿아 결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지적장애인들이 왜 결혼을 하느냐’는 잘못된 인식과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잘 먹고 건강히 살다 가면 되지’라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죠. 누구나 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시설에서 3쌍의 짝을 결혼시켰습니다. 혜림원에 있던 친구들은 여러 사람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가정도 꾸리고 자녀도 낳고 혜림원을 친정으로 여기며 아기와 함께 시설에 다시 찾아오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돌이켜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지금의 회장직을 맡기 전, 경기도장애인복지시설협회에서 회장을 6년 정도 지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사들의 처우 문제는 굉장히 열악합니다. 아직도 사회복지사들을 ‘날개 없는 천사’라고 부르며 사랑과 희생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우스갯소리로 사회복지사들끼리 결혼하면 생활보장대상자로 전락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있을 때 여러 사람과 함께 고민하면서 사회복지공제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회복지공제회는 사회복지사들을 위해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당시 김문수 지사님을 비롯해 여러 분들을 설득해 경기도에 있는 사회복지 종사자들을 위한 공제회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지금은 그 공제회가 잘 돼서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서도 공제회를 만들고 정부에서도 공제회를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의 반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힘들고 어렵더라도 금방 지나갑니다. 어려워도 그 경지를 뛰어넘어 꿈과 희망을 품고 살기를 기대하면 ‘희망은 볼 수 없는 곳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루게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요즘 경제도 어렵고 여러 가지 힘든 일도 많지만 희망스튜디오를 통해 여러분도 희망의 꿈을 이어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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