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춤추는 세상을 꿈꾸며, 바퀴를 굴리다
모두가 춤추는 세상을 꿈꾸며, 바퀴를 굴리다
  • 최지희 기자
  • 승인 2012.11.12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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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前 휠체어댄스스포츠 국가대표 선수

휠체어댄스란,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는 것을 말합니다.

댄스스포츠를 조금 변형시켜 휠체어를 타고 비장애인 선수와 춤을 추는데, 크게 라틴댄스와 스탠더드댄스로 나뉩니다. 라틴댄스는 룸바나 차차차 등 빠르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고, 스탠더드댄스는 왈츠나 탱고와 같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시작하는 단계로,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은 현대무용 및 발레와 같은 예술무용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휠체어댄스스포츠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2009년 은퇴한 뒤 지금은 현대무용 및 한국무용 등 공연 작품을 만들어 선보이고 있습니다.

1997년 26세 때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습니다. 쉬는 기간 동안 친구들과 로키산맥 여행을 가려고 움직이던 중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자동차가 구르면서 도로 밖을 벗어나 언덕 밑으로 떨어졌고, 척수신경이 손상돼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사고를 당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휠체어를 타고 막연히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평상시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봐도 특별한 생각이 없었고, 장애에 대해서도 잘 몰랐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부터 장애를 인식하고 실감했습니다.

캐나다에서의 장애에 대한 시선과, 한국에서의 장애에 대한 시선은 많이 달랐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3~4년간을 고민하며 보냈습니다. 고민하는 시기가 지나고 조금씩 밖으로 나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쯤, 휠체어댄스를 알게 됐습니다.

휠체어댄스를 하면 캐나다의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여행과 운동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인생의 즐거움과 새로운 변화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휠체어댄스를 시작했습니다. 하다 보니 재미는 물론 활동이 점점 많아지면서 춤이 제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처음 휠체어댄스스포츠를 할 때 기본적인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2002년 휠체어댄스스포츠연맹이 만들어졌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휠체어댄스스포츠 대회가 없었기 때문에 외국대회에 참가하곤 했습니다. 한국이라고 적힌 팻말이 없어 종이에 써서 들고 나간 적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지원도 없던 때라 본인이 부담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도와줬습니다.

또한 ‘장애인을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춘다’는 시선 때문에 같이 할 사람들을 찾지 못하거나 부정적인 시선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공연하면서 조금씩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휠체어댄스스포츠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어떤 댄스스포츠보다 상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보통 비장애인 선수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 대한 이해 등이 부족하고, 장애인 선수는 휠체어를 움직이거나 동작을 취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처음에는 마찰이 생기거나 헤어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다섯 번 정도 상대가 바뀌곤 했습니다.

2004년도에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제가 상대가 없이 혼자 있을 때, ‘제자가 한 명 있는데 같이 춤춰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로 만나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1년 6개월가량은 소통도 잘 되지 않았고, 서로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춤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협력심도 생기고, 어려운 시기를 같이 넘기는 등 은퇴한 뒤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대회를 치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앞서 말한 팻말이 없어 종이에 적어 나간 대회입니다. 2005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대회인데, 그때 개인적으로 ‘휠체어댄스스포츠를 계속 하느냐 마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고, ‘이 대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나갔습니다.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직업적인 부분 등 삶의 중심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더군다나 팻말도 없어 종이에 써서 들고 나간 대회였는데, 뜻밖에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우승을 하고 나니 그 대회의 운영진에서 한국선수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그때 그 감동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도 예상과 달리 예선을 뚫고 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1·2등은 아니었지만, 두 번째 세계대회에 나갈 수 있는 6위권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휠체어댄스스포츠를 하면서 어려웠던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친구와 가족의 응원 덕분입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휠체어댄스스포츠를 시작한다는 것만 아신 채 돌아가신 상태에서, 어머니께서 제가 활동하는 것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습니다.

휠체어댄스스포츠를 보고 춤을 추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막상 시작해보면 몇 개월 동안 생각만큼 예쁘거나 아름다운 동작이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어떤 일이든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그에 따른 결과가 생깁니다. 적어도 3~4년이 지나야 ‘여기서 더 가느냐 마느냐’를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춤’입니다. 상대와 교감해야 하고, 자신이 정말 즐겁게 춤춰야 보는 사람 또한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휠체어댄스스포츠를 하면서부터 휠체어를 타고도 춤출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단순히 댄스스포츠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춤도 출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으로 작품을 만들어 외국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대중에게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