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 ‘네 잘못이 아니야’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 ‘네 잘못이 아니야’
  • 최지희 기자
  • 승인 2012.10.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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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복지재단 희망사업본부 김해영 본부장

저는 대학원에서 국제사회복지학을 전공했습니다. 20대 중반에 편물기술 분야에 10여 년의 경험을 가진 경력자였고, 한국에서 잘 나가는 기술자이자 성공한 금메달리스트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재수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고, 때마침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새로 생긴 직업학교에서 편물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습니다.
‘이쪽 문이 안 열리면 저쪽을 가보자’는 생각에 지원했고,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14년 동안 자원봉사자이자 선교사로 직업학교에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교를 운영했습니다. 1990년 2월 보츠와나에 도착했을 당시 수도도 전기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욕망이 끝도 없었던 상태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왔다’는 색다른 자부심에 굉장히 행복했습니다.

학교가 문을 연지 4년이 지나자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 교사 대부분이 떠나고 저 혼자 남았습니다. 저도 떠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학생 다섯 명이 먹을 것을 사들고 와서 ‘네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우리한테 가르쳐주면 그것이라도 배워서 자격증을 따고 취직해서 일할 거야. 그러니까 너만 있으면 돼’라고 말했습니다.

차마 그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나는 대학도 안 나왔고 영어도 못하며 힘이 없어’라고 변명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고, 그때부터 교장으로서 학교를 맡아 10여 년 일했습니다.

학교를 정식으로 맡았을 때는 학생과 교사를 포함해 20여 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10년이 지나 떠날 때는 80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졸업생은 450여 명 정도였습니다. 졸업생들 중 일부는 사회에 나가 각자 자리를 잡고 일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사람은 생활이 윤택하다고 해서 마음의 행복까지 채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기술자로 열심히 살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장애인이었고 여전히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보츠와나 사람들은 저를 장애인으로 대하지 않고 그냥 한 사람으로 대해줬습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일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했을 때 가치가 빛난다’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그렇게 있으면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해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 분야가 사회복지학이기에 선택했습니다.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사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려고 계획했는데, 아프리카 말고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회복지 문제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세계에서 진행되는 사회복지문제들을 배웠고, 외국과 관련된 일들을 다루고 있기에 국제사회복지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제가 밀알복지재단 희망사업본부 본부장으로 취임한 것은 지난 6월 말입니다. SBS 방송국에서 희망학교 짓기 사업을 하고 있는데, 한 기관으로서 이를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사업인데, 아프리카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자 아프리카에 돌려줄 때가 됐다는 생각에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보면 미국과 아프리카를 왔다 갔다 하며 일하는 폼 나는 사람이 됐지만, 그렇게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맏딸로 태어났는데, 당시 ‘쓸데없는 계집아이’라는 남아선호사상에 밀려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오셔서 저를 밀치셨고, 그때부터 저는 척수 손상으로 장애인이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라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구박과 미움을 받았고, 저는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 ‘누가 나를 낳아달라고 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세상에 오고 싶어서 온 적도 없고,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적도 없습니다.
그저 와보니까 모두 제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단지 어머니께서는 무학이셨던 데다 맏딸이 그렇게 되니 나름 어려움을 제게 퍼부으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제가 7~8살이던 때, 어머니께서 우울증을 겪고 계셨습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네 명의 동생들을 어머니 대신 돌봐야했고, 스스로도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너는 쓸데없이 태어났어’,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주변의 말에 스스로를 원망하며 사는 어린이·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저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은 ‘무언가가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 열심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고 있다는 것, 그 자체에 용기를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