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복지재단 임성규 대표

그동안 사회복지가 관(官) 주도로,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이용자 중심으로 사회복지현장과 소통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시대입니다.

저는 지난 2월 13일 취임해 서울시복지재단의 5대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대표이사 자리가 교수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 이번에 사회복지현장 전문가가 대표이사로 됐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서울시복지재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비전문가가 대표이사로 온 것을 반대했습니다. 2007년도에는 서울시 사회복지예산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비판·견제 및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NGO(비정부기구)가 없었습니다. 서울복지시민연대를 만들어 서울시의 복지정책과 서울시복지재단을 비판했던 제가 대표이사가 되는 시대가 왔다는 데 감흥이 남달랐습니다.

이전에 서울시복지재단의 성과를 감히 평가해본다면,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희망플러스 통장’, ‘E-품앗이’, ‘디딤돌사업’ 등 선도적이고 서민친화적인 복지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재단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회복지현장의 평가 및 경영 상담과 같은 작업을 통해 복지시설의 품질관리를 고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세 번째는 저소득층의 자산 형성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 및 복지시설에 대한 패널데이터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등 선진복지정책과 표본을 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살펴보면, 사회복지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동원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서울시와 서울시복지재단이 정책을 만들어 서울 사회복지기관장에게 공문을 보내고, 그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그렇게 시책이 실행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회복지현장과,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시가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상호작용하길 바랍니다.
단순히 사회적 취약계층을 돕는 것만이 복지라는 생각을 벗어나야 합니다. 사회적 취약계층을 돕는 것을 넘어,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체제를 섬세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복지입니다. 또한 변해가는 복지패러다임에 맞는 정책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무상급식·복지국가 논쟁 등 서울시 복지정책은 정치적인 상황과 많이 맞물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선적으로 민간·공적인 영역에서 만나 소통하고 합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지와 풀뿌리가 만나 함께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래서 마을의 힘을 키우는 기회를 서울시복지재단에서 함께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복지과 사회적인 의제이자 핵심으로 등장했습니다. 선진복지국가 표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개별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합의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선진복지국가를 두고 북유럽을 이야기하는데, 북유럽은 복지정책과 관련해 사소한 변화까지도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합니다.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다시 전문가의 의견을 갖고 시민대표들과 논의해서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이처럼 서울시도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렇게 되면 복지국가로 진입하는 데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소통하고, 합의하고, 마을의 힘을 키워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도봉구에서 20여 년 정도 비슷한 사업들을 펼쳐왔었는데, 복지와 풀뿌리가 만나서 서로 합의하고 고민하는 방식들이 결국은 지역을 풍성하게 하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것들의 큰 틀을 만들고 살을 입히는 것이 서울시복지재단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제가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할 때 일반적으로 지역사회복지관에서 이뤄지는 재가복지의 유형이 너무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몸이 불편한 노인이 있으면 사회복지사가 그 노인을 병원에 모셔드리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지어 받고 다시 집으로 모셔드립니다. 병원이나 약국에 사람이 붐비면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2002년 말 동네에 의사와 약사 15명으로 구성된 의료인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2명의 의료인이 점심시간에 왕진가방을 들고 몸이 불편한 노인의 집에 방문하고, 직접 찾아가지 못하는 의료인은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대신 처방전을 약사에게 바로 전달합니다. 처방전을 받은 약사가 약을 조제해 해당 복지관에 갖다 주면, 노인이 복지관을 방문할 때나 자원봉사자가 노인을 방문해 약을 전달합니다.

2003년도에는 언제 위급한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노인의 경우를 대비해 응급처치 교육을 받은 주부들로 구성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1주일에 2회 이상 위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가정을 방문해 말동무 및 집안일을 돕습니다. 2004년에 접어들면서는 노인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전문기술을 가진 아버지들로 꾸려진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집수리를 해주는 작업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모임들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회복지사의 역할이었습니다. 필요한 일이라는 데 모두가 기꺼이 동참했고, 기본적으로 복지 쪽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원봉사자에게 요청하면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저의 조언자는 아버지입니다. 제가 어릴 적 서울 삼양동이라고 하는 미아2동에 살았었는데, 당시 실향민들이 집단 이주한 동네기도 했습니다. 동네에서 교회를 개척해 아버지께서 45년 동안 목회를 하셨는데, 친구도 많고 이웃과의 관계도 돈독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늘 ‘우리는 그래도 중간이야’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육성회비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커가면서 빈곤과 가난을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것이 현재에 이르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그 꿈을 여러 명이 같이 나누면 현실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함께 꿈을 만들어가고, 그래서 서울시를 비롯한 우리사회가 좀 더 재밌고 신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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