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지구대 김영철 경위

대한민국 최북단 강원도 철원에서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철 경위라고 합니다.
저는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꿈이 경찰관이었습니다. 나를 키워준 사회와, 제 꿈을 이루게 한 경찰조직을 위해 어떤 일을 하면 조금이나마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시작한 게 나눔과 봉사입니다. 작은 것들이지만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한 결과,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복날이나 명절이 되면 소년소녀가장이나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합니다. 복날이 되면 지역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삼계탕 한 그릇씩을 대접하고 있고, 올해 8년째를 맞이했습니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냥 어르신들하고 식사 한번 같이 했으면 하는 마음과, 여름을 잘 이기시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외곽지역에 계셔서 복날 대접을 못 드린 어르신들께는 음식 및 과일을 준비해서 직접 찾아뵙고 같이 식사합니다.

처음 자장면을 대접할 적에, 어느 어르신께서 ‘내 나이 84세인데, 80평생 순사한테 밥 처음 얻어먹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가슴에 확 와 닿았고, 그동안 이러한 것도 못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업무적으로도 큰 효과가 있습니다. 교통사고 예방이나 보이스 피싱 예방 홍보를 위해 모이시라고 하면 잘 안 모이시는데, ‘자장면 드시러 오세요’하면 많이 오시니까 그런 자리에서 이야기하면 예방 효과도 있고 좋습니다.

소년소녀 가장에게는 명절 때 선물을 보내주고,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하는 정도입니다.

매년 250인분의 삼계탕을 준비하는데, 사서 대접하려면 가격이 너무 비싸 감당이 안 됩니다. 그래서 직접 닭과 그 밖의 재료들을 구입해서 식구 및 동료의 도움을 통해 삼계탕을 만듭니다. 매년 초에 연중 계획을 세워서 제가 쓸 수 있는 용돈의 일부를 조금씩 모아 준비합니다.

처음에는 가족은 제가 봉사활동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사람들에게 알려지다 보니까, 그때 가족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가족들이 불평이나 불만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다른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본다고 해서 제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것은 봉사가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풍족한 생활은 아니지만 밥 먹고, 따뜻한 옷 입고, 학교 다니는 등 기초비용을 제한 나머지는 저축대신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게 옳다며 가족을 설득했습니다. 삼계탕 같은 경우, 가족의 도움 없이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큰 아이가 중학교 3학년, 작은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인데 아직 봉사활동에 대해 잘 모릅니다. 가끔 아빠가 텔레비전에 나왔다는 소식을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듣는 정도인데, 나름대로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또 기꺼이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봉사활동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해, 처음부터 조금씩 해 왔던 것들이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나 비용에 대한 걱정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 오해 받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럴 때 힘듭니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올 수 있게끔 할 테니까, 어려운 데 찾아가서 나눠라’, ‘말로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대꾸하며 이겨내고 있습니다. 남이 뭐라고 해도 내 길을 간다고 생각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독거노인의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입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외로워하시는데, 때문에 가능하면 자주 찾아뵙고 말벗이 돼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품이나 금전적인 후원도 필요하지만, 주변에 이런 어르신들이 계신다면 찾아뵙고 관심을 갖는 게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일에 관심을 갖고 시작할 때는 직접적으로 다섯 분을 돌봐드렸는데, 세 분이 돌아가시고 지금은 두 분을 돌봐드리고 있습니다.

저희 경찰서에 ‘청렴동아리’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제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3년 전부터 직접 짠 프로그램과 다과 등을 준비해서 시설을 찾아가 위문공연 등을 합니다. 지역에 있는 가수를 섭외하고, 경찰서 직원 중 색소폰 연주나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하는 것입니다.
 
8년 전 한 신문에 실린 제 봉사활동 기사를 보고 강원도 횡성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동냥젖을 먹이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돌봐 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었습니다. 좀 망설이다가 아내와 함께 아이를 만나러 갔는데, 태어난 지 100일이 갓 지났고 이름은 ‘장우영’이었습니다. 우영이의 아버지는 자리를 비우신 상태고, 어머니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사정이 딱해 위탁으로 우영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한 2년 키우다 보니 우영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말도 못하고, 잘 걷거나 서지도 못하고, 아내가 하루 24시간 붙어 지내다시피 했습니다. 진단을 위해 병원에 갔는데,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사는 지역이 시골이라 주변에 재활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고, 경기도 광주시에 어린이재단 산하 한사랑장애영아원이라는 곳을 알게 돼 우영이를 보냈습니다.
보내놓고 마음이 너무 아파 우영이 이름으로 매월 5만 원씩 후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영이가 8세가 돼 서울에 있는 다른 시설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영이가 어렸을 때는 집에 데리고 와서 지내다 가기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후원만 하고 있어 마음에 걸리고 생각이 많이 납니다.

우영이를 데리고 왔을 때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장인·장모님도, 아이들도 모두 우영이를 좋아했습니다. 온가족이 우영이로 인해 많이 웃고 많이 울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변한 것은 얼굴입니다.
처음 제가 경찰에 입문했을 때 인상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인상이 편안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어떤 책에서 본 것인데, 사람의 팔자를 바꾸는 세 가지는 ‘봉사와 적선’, ‘독서’, ‘명상’이라고 합니다. 봉사를 많이 하면 팔자가 바뀐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곁’이 돼 그 사람을 위로하고 지킬 수 있는 게 경찰관이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봉사와 나눔 실천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하는 게 봉사입니다. 또한 ‘재능기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시작할 수 있고, 그것이 나눔의 시작이며, 결국 스스로가 얻는 게 더 많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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