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게 웃으며 강의 중인 고홍석 씨 ⓒ2007 welfarenews
▲ 해맑게 웃으며 강의 중인 고홍석 씨 ⓒ2007 welfarenews

그가 풍선을 들었다. 그의 입김이 닿자 풍선이 부풀어 오른다. 그의 손끝이 닿자 아무것도 아니던 풍선이 아름다운 형상을 갖춰 나간다. 죽어 있던 풍선이 살아 움직인다.

벌룬아티스트 고홍석(36세ㆍ시각1급) 씨. 사무실에 들어서자 사람들 앞에서 매직풍선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는 들고 있는 풍선의 모양과 세밀한 선까지 정확히 설명했다. 정말 시각장애인일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저보고 진실을 밝히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길을 가다 잘 보이지 않아서 부딪히거나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죠.”

고홍석 씨는 처음부터 시각장애인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베체트병에 걸리면서 피부질환을 앓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시력이 점점 나빠졌다. 베체트병은 눈ㆍ구강ㆍ성기 등에 염증이 생기거나 상처가 오래 지속되는 염증성 질환으로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희귀병이어서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시력이 1.0 이상으로 좋았다는 고 씨. 한창 예민할 나이였을 텐데 장애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에게 장애 때문에 힘들지 않았냐고 슬쩍 물어봤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고홍석 씨는 “지금의 시력을 갖게 되기까지 20여년이 흘렀다. 의사가 실명할 거라고 말해서 예상은 하고 있었다”며 “천천히 장애를 갖게 됐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이 힘들었냐고 물을 때마다,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냐고 물을 때마다 당혹스럽다고 덧붙였다. 고 씨는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한 편이지만 큰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병 때문에 스스로를, 혹은 세상을 원망하거나 슬퍼한 적은 많지 않다. 자연스럽게 나의 일부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고홍석 씨의 강의 장면 ⓒ2007 welfarenews
▲ 고홍석 씨의 강의 장면 ⓒ2007 welfarenews

1998년 고홍석 씨는 문화센터 전단지를 통해 풍선아트를 만나게 됐다. 이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풍선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통해 기쁨과 희열을 느꼈다. 잘 보이지 않아서 어려움도 컸지만 그만큼 더 노력했다. 풍선은 그에게 끊이지 않는 호기심과 재미를 선사했다.

고 씨는 “생각했던 이미지대로 나오지 않을 때도 있고 전혀 다른 형상이 나올 때도 있다”며 “하지만 그러한 경험이 좌절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작업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풍선으로 작품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많은 사람이 풍선의 아름다움과 매력, 재미 속으로 푹 빠져들게 하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다. 벌룬포유라는 사업체를 운영 중인 고 씨는 벌룬아트공연, 대형공동작품, 풍선을 활용한 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고 씨는 “풍선을 통해 창조의 기쁨을 얻은 만큼 많은 사람들이 풍선의 매력을 느끼게 하고 싶다”며 “강의를 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함께 재미있는 작업을 진행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사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강조하는 고홍석 씨. “너무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그는 “항상 재미있는 것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의욕도 생기고 즐겁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와 대화하면서 살아 숨쉬는 생명의 활기가 내게도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남들이 말하는 아픔과 상처에 머물지 않고, 꿈을 꾸고, 새 세상을 창조해가고 있었다. 그는 생기를 불어넣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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