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짐 떠안아야 하는 한국 장애인 부모장애인 평생 연금제도 마련돼야
여름의 한가운데 8월 3일부터 8일까지 5박6일간 한국장애인부모회에서는 행정자치부의 지원을 받아 일본재활시설 연수를 다녀왔다. 부모회 임원 총 32명이 견학한 곳은 일본 고베, 교토, 오사카 지역의 장애인복지지설이었다. 이번 연수는 일본의 시설 견학을 통해 일본의 장애인복지역사와 정책에 대해 바로 알고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정책의 방향과 비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취지로 진행됐다. 이번 연수에 참가했던 김은순(49·정신지체분과) 부회장의 수기를 싣는다.
일본연수를 다녀와서...
내 아이는 22살, 정신지체2급
""엄마, 선물 많이 사오세요.""딸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명랑한 목소리로 나를 배웅했다. 목소리는 그래도 엄마 품을 잠시라도 멀리하는 것이 섭섭한지 얼굴에는 연방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런 딸아이를 뒤로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딸아이는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이다. 벌써 처녀가 다 됐다. 22살이다. 이제는 저도 직업을 갖기 위해 보호작업장에서 실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동료들과 어우러져서 꼼꼼하게 제 일을 해 내는 것을 보면 보람이 크다. 딸아이의 미래와 또 다른 장애인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번 일본 연수는 그 의미가 크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 아이들에게 심어주고픈 희망의 높이만큼 비행기는 하늘높이 구름을 타고 떠올랐다.
저녁 무렵 도착한 일본 간사이 공항은 짧은 이동시간 때문인지 전혀 색다른 느낌은 아니었다. 차를 타고 고베로 이동하는 동안 눈에 비치는 바깥 풍경은 날이 조금 어둡기도 한데다가 건물 벽이 온통 잿빛이라 삭막한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공업단지를 보는 듯하기도 하고... 어디서 축제라도 벌이는지 간간이 하늘에 번지는 불꽃은 그 삭막함을 조금은 희석시켜 주는 듯했다. 잿빛과 화려한 불빛이 한몸이 되어 깊은 밤으로 들었다.
8월 4일. 고베 ""행복촌""의 아침은 뜨겁기만 하다. 섭씨 35도를 웃도는 더운 날이다.넓지는 않지만 잘 정돈된 행복촌으로 가는 길은 마치 유럽 어느 지역을 연상시킬 정도로 그 고즈넉함과 우거진 녹음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먼저 행복촌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을 듣고 세 군데 시설을 둘러보았다. 행복촌은,1989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15년째에 이르는 유럽모델을 도입한 복지타운이라고 한다. 미야자키 시장이 10년 동안 구상하고 8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었으며 9개의 장애인시설을 갖추고 비장애인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통합사회를 지향하는 종합시설이다. 지방분권이 잘 돼 있는 고베시 주도로 이뤄졌으며 도심으로 이어주는 전용고속도로가 놓여 있다. 전체면적 63만평, 사업비 6,000억원, 직원 2,200명 그 중 장애인은 200명.
첫 번째로 구경한 곳은 ""정신지체인 수산시설(정신지체장애인 근로작업장, 이용시설)"". 이 기관은 고베시에서 무상으로 부지를 내어주고 건립비용은 국가와 고베시의 보조금과 부모회가 일부 부담해서 이루어졌다. 이 곳에서 하는 작업은 창작수예, 쇼핑백 제작, 수영장 청소, 버스정류장 휴지 줍기, 호텔객실 청소 등이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워크홈 명우(중증신체장애인 근로작업장, 생활시설)""이다. 고베시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시작됐고 일보다는 하루를 즐겁게 지내는데 그 목적을 둔다. 1회용 카메라 재활용선별작업, 쓰레기봉투 제작, 자판기(120대) 관리 수거 등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니코 니코 하우스(중증장애인 요양시설)"". 2001년에 건립된 중증중복장애인을 위한 의료시설과 생활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요양소이며 전국에 100개의 시설이 있다. 가정에서 캐어가 안될 정도의 중증장애인을 캐어, 가정에서도 의료지원서비스를 한다. 진료비는 기본 부담 없음, 의사는 고베시에서 파견하며 의사급여는 일반병원 수준이다. 행복촌의 시설 세 곳을 둘러보는 내내 흐르는 땀으로 목욕을 했다. 그리고 이제 숙소로 향하는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기본적인 장애인 연금이 확보되어 있고 그걸 바탕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일본 장애인들은 생계를 위한 작업활동보다는 여가 중심의 작업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엔 언제나 준비된 환경이 그들을 맞이하고 복지사들도 많은 시도들을 통하여 인정된 캐어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환경이 부럽기만 했다.
요양시설의 환경은 제정이 확보된 상태라면 우리나라 역시 훌륭한 시설을 갖출 수 있다는 면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환경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자세와 인식에서 쉬이 좁혀지지 않는 차이가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8월 5일.이른 아침, 우리 일행은 다시 떠난다. 고베에서 교토로 이동해서 지체장애인 생활시설과 정신지체인 수용시설을 돌아보기로 했다.
""지체장애인 생활시설""은 100% 휠체어 사용자인 30~70세의 50명이 이용한다. 규칙적인 프로그램 없이 일반가정과 같이 자유로운 생활을 자율적으로 한다. 이곳 역시 작업활동과 여가생활을 하나 연금이 보장돼 있어 보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정신지체장애인 근로 작업장""은 복지적인 근로 작업장이며 모두 55명이 근무하고 있다. 과자상자 접는 작업, 천연염색, 접시와 컵 제작, 세탁 등의 작업을 한다.
""교토시립 정신지체 특수학교""는 교토시 시범학교로 한 교실에 교사가 여러 명 들어가는 개별식 맞춤 교육을 한다. 학급 정원은, 초등부가 2∼3명 당 교사 1인, 중등부가 4명 당 교사 1인, 고등부가 5명 당 교사 1인이며 총 학생수는 192명, 교직원수는 119명이다. 특수학교는 교사의 전문성이 요구되며 교육 복지센터의 역할을 하고 교재 교구를 직접 개발하여 일반학교의 특수 학급도 지원한다. 직업교육은 중등부에 시작하고 고등부에서는 직업관련 실습을 구 단위로 한다. 교토시에서 운영하는 6개의 학교 중 3개가 정신지체 학교이며 2004년부터 장애 유형별이 아닌 통합제 학교로 운영될 예정이다.
교토 학교의 학급 정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비교해 보면 우리 특수 학교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이 들지 확실히 알게 되고 많은 인원의 아이들을 데리고 양질의 수업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요즘은 일반학교 특수 학급에 잘 적응하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아서 특수학교의 초등부 학생수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중고등부로 올라갈수록 특수학교로 되돌아오는 학생이 많아져 어쩔 수 없는 과밀 학급이 되고 만다. 직업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음에도 제대로 시행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되짚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는 생각이다.
8월 6일. 이제는 오사카다. ""뽓뽀 장애인 자활사업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빵공장으로 비장애인 4명, 장애인 7명(정신지체3명, 지체장애4명) 총 11명이 직원이다. 이곳의 수입은 오사카시 보조금 7천만원(연간), 고용촉진공단 2,500만원(연간), 월수입 2,000만원이며 급여는 최저 70만원 , 최고 110만원, 비장애인 140만원이다.
여기서 만든 빵은 주변의 어린이집 등으로 매일 배달하고 뇌성마비장애인인 운영자와 다른 장애인이 함께 배달한다. 비장애인의 이직률이 높은 편이고 주된 업무는 비장애인 선에서 이루어지고 장애인들은 보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업장 대표는 그동안 모은 수익금 40억으로 건물을 지어 이제 거의 완공 단계에 다다랐다고 했다. 그 건물에는 자활작업장과 카페, 그룹홈 등을 만들었고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 시설도 갖추었다. 좋은 환경의 건물을 짓고 있으면서도 운영자는 그 곳에 들어가 살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노력하여 이루어 놓은 곳에 당연히 우선권을 내세우는 우리의 사고와 자못 달랐다. 자신의 안락함을 찾기보다 다른 힘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서 진정 ""장애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알쏭달쏭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파티 파티 자립지원센터""는 신변자립이 되지 않는 장애인에게 일상생활을 지원해주는 센터이다. 신변, 외출, 이동, 상담 등의 서비스 지원을 중심으로 장애인이 주최가 되어 운영한다. 이곳은 그 동안 둘러본 시설 중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곳이며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런 캐어 지원 센터가 많이 생기고 원활히 운영될 수 있다면 현재 우리의 숙제로 남아있는 장애인 이동 문제라든가 그밖의 다른 문제들의 해결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8월 7일. 연수 일정의 맨 마지막으로 ""일본농아인협회 오사카지부""를 방문했다. 일본 청각장애인 수는 4만여 명. 이 곳에서는 수화통역사에 대한 지원을 하며 취업 직종으로는 기계, 사무, 컴퓨터 관련 업이며 주요 업무는 수화통역사 파견, 생활 상담, 수화 강습회 등이다.  돌아오는 길, 짐을 다시 짊어지고...한국 장애아의 부모는, 정책적으로 쉬이 바뀌지 않는 많은 사안들에 눌리고, 홀로 모든 짐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감에 눌리고... 하다못해 작은 작업장 하나 차리려면 너무나 많은 제약과 재정적 부담...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는데 이럴 때 한 포기의 풀보다 나약한 장애아의 부모는, 가슴이 또 한 번 무너진다.
""장애인 평생 연금 제도""는 나의 숙제일정을 마치며 나의 뇌리에 각인된 것은 일본 장애인 복지의 기본은 장애인 연금제도에 기초를 둔다는 것과 우리의 실정과 일본의 그것이 다르다 해도 현재 생활보호대상자에 한한 연금제도가 모든 장애인에게 확대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절실하다. 빡빡한 일정과 무더운 날씨, 게다가 우리의 실정보다 너무나 앞서가 있는 일본의 복지제도 등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 마음 한가운데 뱅글뱅글 맴도는 것은 ""장애인 평생 연금제도""였다. 나는 그 하나의 숙제를 가지고 왔으며 그 숙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희망이 곧 생길 것 같다.
늦여름 늦은 오후 차창 밖으로 잠자리가 낮은 비행을 한다. 여름의 꼬리를 물고 유유자적하게 볕을 즐긴다. 우리 아이들도, 그들의 부모들도, 저 잠자리처럼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해본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